90세의 가평전투 참전 캐나다 용사와 가평의 소년 ‧ 소녀들
90세의 가평전투 참전 캐나다 용사와 가평의 소년 ‧ 소녀들
  • 최수경
  • 승인 2021.10.01 12:2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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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 29일, 캐나다군 가평전투 참전용사 한분이 가평의 북중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현재 심경을 묘사한 시 한편을 보내왔다.

가평군은 현재 90세의 고령으로 오랫동안 지병인 관절염을 앓고 있는 가평전투에 참전한 마이클 추보카(캐나다)씨의 시가 멀리 바다건너 가평으로 보내왔다고 전했다.

추보카씨는 우크라이나 출신 캐나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18세 때 한국전쟁이 터지자 입대 원서를 제출했다.

나이가 어려 입대가 거부되었지만 나이를 한 살 올려 기어이 군대에 입대했다.

그는 프린세스 패트리샤 경보병여단 2대대에 배치되어 한국전에 참전했다.

운명의 가평전투! 1951년 4월 24일 마장초등학교 뒷산 677고지 캐나다군 500명 대 중공군 5,000명. 밤10시부터 6시간 이상 피아간의 불꽃 튀는 총격전이 계속되었고 중공군은 수도 서울로 진격하려고 인해전술로 밀어붙였다.

그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는 것 뿐 더 할게 없었다.

같은 참호 안의 전우가 이마에 총탄을 맞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죽어가지만 돌볼 틈도 없었다.

적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살아나기 위해 총을 쏘고 또 쏘아야만 했다.

여명과 함께 총성이 멈추고 능선에 즐비한 시신들. 치열했던 전투는 캐나다군 전사 10명, 중상 23명인 반면, 중공군 1,000명 전사자를 내고 북으로 퇴각하는 대승의 전과를 기록했다.

귀국 후 그는 ROTC 장교, 교사, 교장, 교육장, 교수 등 교육계에 몸담으며 5권의 저서를 남기고 90세가 될 때까지 치열하게 살아왔다.

그는 한국을 잊지 않고 한국 전쟁 후 매니토바주 한국전참전용사회를 조직하고 가평전투지역 근처에 있는 가평북중학교 학생들을 위해 지금까지 매년 225만원 상당의 캐나다군 참전용사 장학금을 보내오고 있다.

이 장학금은 가평북중학교 9명의 학생들에게 25만원씩 전달되어 향학열을 북돋아주고 있다.

90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추보카 할아버지는 관절에 극심한 통증으로 2년 전부터 캐나다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보행기에 의지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.

이제 보행기에 의지해 병원생활을 하며 가평전투를 회상하며 「보행기」라는 시를 한편 보내왔다.

「 내 나이 90살에 최근 건강생활을 위해 우리에 갇혀 살게 되었다.

오직 보행기만이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자, 강력한 기계 종마다.

네 개의 바퀴에 파란 철골과 부드러운 좌석의 보행기는 나에게 많은 애정을 가져다준다.

그녀는 나를 사랑한다.

나를 따라다니며, 내 허리 둘레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꾸짖는다. ( 후략)」

이 시와 소식을 접한 가평북중학교 학생들은 추보카 할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위해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.

가평군은 학생들의 위문편지를 모아 10월 12일 캐나다로 보낼 계획이다.

70년 전 가평에서 맺은 혈맹의 인연이 세대를 초월하여 이어지고 있다.
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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